* 정서의 본질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초기에는 정서가 이성과 상반되는 개념이자 이성에 종속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이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정서를 유발하는 요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정서에 관한 역사적 관점은 어떠한 변천사가 있는지 살펴볼까요?
1) 이성과 정서의 관계
그리스 시대의 소토아 학파는 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정서가 담당하는 역할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현자란 정서와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였고, 이는 이후 유태교나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서구 사상에서는 강한 반정서적 분위가 형성되었다. 이성이 우세하던 서구역사 전반에 걸쳐, 감성이 지나친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로 취급을 받았으며, 따라서 인간의 정서적 특성을 적절하게 억누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시도되었다고 한다.
정서에 대한 초기의 관점은 이성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인식되었으며, 정서에 대한 연구는 이성에 대한 연구의 부산물로 간주되었다. 이성과 정서에 대한 가장 지속적이고도 대표적인 비유는 주종관계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성이라는 지혜로운 힘의 통제 하에 정서라는 위험한 충동이 안전하게 억압되고 양자 간에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정서에 대한 관점을 결정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정서의 열등한 속성, 즉 보다 원시적이고, 덜 지적이며, 통제하기 어렵고, 위험하고,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정서의 열등한 속성을 가종하는 점이다. 둘째, 이성과 정서는 명확하게 상이하고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양자 간에 구분을 시도했던 학자들조차도 정서와 이성을 전혀 상이한 속성을 가진 진 개념으로 구분함과 동시에 정서를 이성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시각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서를 오히려 진정한 지혜의 덕목이며 이성의 주인이자 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기초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데카르트는 모든 사람은 자기 내부에서 정서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서는 고차원적인 지적 과정의 한 유형으로 내적 정신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함으로써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18세기에 들어와 흄도 오히려 이성이 감정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흄은 감정을 도덕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정신적 기능으로 보았으며, 이는 이성과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이기심을 자제토록 하고 도덕성을 확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기능이라고 하였다.
또한 18세기에 들어와 유럽의 낭만주의 운동은 감정이입이나 직관적 사고와 같은 노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찰력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즉, 엄격하고 이성적인 규칙에 대항하여 자유롭게 정서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 히피운동이나 여성운동, 반전운동 등의 움직임은 이성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정서적 변혁의 시기로 표현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정서를 경험하고 있으며,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하였다. 또한 화난 감정의 표현은 불평등에 대한 필요한 신호라고 하였다.
2) 정서 유발요인
이성과 정서 간의 대립의 역사만큼이나 정서를 유발하는 요인에 대한 생물학적 관점과 인지적 관점 간의 대립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서의 생물학적, 신체적, 신경조직적 측면을 강조하는 전통은 데카르트를 원조로 보고 있으나 이는 실은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시에 스피노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적,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전통도 종재하는데, 이는 스토아 학파나 아리스토텔ㄹ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생물학적 관점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의 정신세계의 신성, 정신, 욕망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이에 정서는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우리가 정서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과 욕망 사이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심포지엄]에서 에로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서에 신성적인 요소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후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서를 의구심과 사랑, 증오, 욕망, 기쁨, 슬픔의 여섯 가지 생래적인 기본정서로 가정하였으며, 다른 모든 정서는 이들 여섯 가지 정서의 혼합물이거나 이들로부터 파생된것이라고 주장하엿다.
19세기에 들어와 Darwin(1872)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정서는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환경에 적응해오는 진화과정에서 계통발생적으로 얻어진 유산이며 이는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이후 Plutchik(1980)의 진화심리이론으로 계승된다.
(2) 인지적 관점
정서에 대한 생물학적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정서를 즐거움이나 괴로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속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정서에는 분노, 두려움, 동정심,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정서가 있다고 하였으며, 특히 분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분노의 정서를 "자신과 친한 사람으로부터 부당하게 멸시를 받은 데 대해 확실하게 보복하고자 하는 고통스러운 욕구"라고 정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는 특정인에게 향하는 것이며, 이에는 신체적 고통이 수반된다고 하였다. 무례함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은 미덕이라기보다 악덕이라고 보고, 오직 바보들만이 분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평가에서 인지적 요인을 강조한 최초의 정서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무시함이나 얕잡아 보는 것이 분노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며, 신체적, 심리적 불안감도 분노를 유발한다고 하였다. 분노에 대한 그의 생각에는 뚜렷한 인지적 요소, 특정의 사회적 상황, 행동 경향, 신체적 각성에 대한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Amold(1960)와 Lazarus(1968, 1991)는 동일한 상황이라 해서 사람들이 동일한 정서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정서반응은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인지적 평가에서 비롯된다는 평가이론을, Weiner(1986)는 사건 이전의 평가뿐만 아니라 이후의 평가를 강조하는 귀인이론을, Averill(1982, 1985)은 정서를 사회적 구성과정의 결과로 보는 사회구성주의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생물학적 관점과 인지적 관점을 모두 통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